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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의 도전과 '배수진'



제 소신에 따라 과감히 도전하고 만약 실패하면 그에맞는 정치적 책임을 질 생각입니다


무등일보 : 김동철의 도전과 '배수진'


# 광산에서 태어나 광주일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한 김동철의 첫 직장은 한국산업은행이었다.

87년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로 정권교체의 꿈이 좌절된 후인 89년 4월.

사표를 제출한 그는 권노갑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첫 발을 내디뎠다.

국회 건너편 현 KBS연구동인 당시 의원회관에서 항상 뭔가를 분석하던 번쩍이는 눈빛의 '김 보좌관' 모습은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는 91년 서울시의원 출마, 95년 광산구청장 경선 참여, 96년 총선 출마, 98년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문화분과 전문위원, 2002년 청와대 정무수석실 정무기획비서관 등의 경력을 쌓다 2004년 17대 국회에 등원한다.

이후 3선의 야당 중진이자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인 된 그는 대통령 공약사업인 '광주시 자동차 1백만대 생산기지 조성사업' 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예사롭지 않은 결심을 했다.

바로 내년 2월께로 예상되는 새정치연합 전당대회 출마다.


# 여의도에 선거사무실을 차린 김동철은 29일 국회를 출입하는 광주기자들과 저녁을 함께하며 출마배경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했다.

지금 이대로는 차기 총선승리는 물론 정권교체가 요원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과거의 인물들을 당 지도부로 내세워선 돌아선 민심을 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당내 기류는 이미 문재인 정세균 박지원 등 이른바 '빅3' 후보군이 단단한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한 상태다.

그는 왜 이런 '무모한' 도전에 나선 것일까.


"정치인은 선거가 끝나면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런데 우리 당은 잠시 당직을 내려놓는 것으로 끝납니다. 지난 대선만해도 그래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허망하게 날아가버린 선거입니까. 그 많은 지지자들에게 절망과 한숨, 눈물을 준 분들은 스스로 정치를 그만둬야 하는 겁니다."


지금 거론되는 '빅3 ' 모두 현재의 암울한 새정치연합 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굳이 4전5기의 DJ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정치하는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주문이 아닐까.


"손학규 대표를 보세요. 본인이 정한 지역구도 아닙니다. 2004년 '탄핵바람' 때도 현재의 새누리당이 이긴 선거구에요. 그런데도 당의 명령을 묵묵히 받아들고 사지에 들어갔고, 깨끗히 정계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지금 적지않은 유권자들이 그의 복귀를 바라는 것도 이런 '선당후사' 정신을 높이 평가한 때문 아닙니까."



# 김동철의 이번 도전이 무게있게 다가 오는 건 '배수진'을 쳤다는 점이다.


그는 '빅3'를 향한 날카로운 칼끝을 자신에게도 겨눴다.

"광산 유권자들의 지지와 사랑으로 벌써 3선입니다. 국회의원 그만두면 뭘 할까 고민할 때입니다. 제 소신에 따라 과감히 도전하고 만약 실패하면 그에맞는 정치적 책임을 질 생각입니다."


딱부러지게 표현만 안 했지, 사실상 다음 총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얘기다.

김동철의 이번 도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국 야당사는 간혹 대이변을 연출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왔다.

대표적 사례가 '40대 기수론'의 깃발이 펄럭인 신민당의 70년 임시전당대회다.

박정희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안 국민투표가 통과된 직후인 69년 11월,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의 대통령 후보 지명전 출마선언을 신호탄으로 김대중 이철승이 가세한다. 세대교체 대상으로 지목된 유진산 총재는 '구상유취'(口尙乳臭)라며 불쾌해 했으나 이후 한국정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됐다. 당 안팎엔 김동철의 '비장한' 결단이 김부겸, 이인영 등의 출마선언으로 이어지며 침체된 제1야당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으면 하는 기대도 분명 존재한다.


연초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의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그 과정에서 '원칙론자 김동철'이 당원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을 미리 배제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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